
20일(수) 오전11시부터 중구 사정동 보문산 자락 백호 윤휴 묘정에서 '제346주기 백호 윤휴 선생 추모제'가 진행되었다. 주최 산성마을신문, 주관 백호윤휴선생 추모제추진위원회, 후원 남원윤씨삼휴당파 종친회, 대전중구문화원이다.

내빈으로는 윤영준 남원윤씨 삼유당파, 윤시오 파평윤씨 봉강재 대종회장, 윤배중 파평윤씨 대종회장, 민경배 대전시의회 윤리특별위원장, 김제선 전 중구청장, 오은규 전 중구의회 의장, 임세환 서대전농협 조합장, 송인승 남간사유회장, 안여종 대전문화유산 울림대표 등 중구 산성동 마을주민 등 70여 명이 참여했다.
윤휴 묘정 주변 '윤휴의 길'을 개설한 산길걷기 대회와 산성풍물단의 묘정입구에서 묘정까지 길놀이가 새벽부터 내린 비로 인하여 취소가 되었다.
최창희 (사)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의 사회로 개식, 내빈소개, 경과보고, 약력소개, 추모사, 추모공연, 헌화 순으로 진행되었다.

오수남 산성마을신문 운영위원장 경과보고, 최정화 추진위원이 약력소개, 이기전 추진위원장 추모사, 박지현 배우가 실감나는 추모공연이 있었다. 묘정아래에서 추모제가 끝나고 헌화는 묘정까지 다함께 올라서 유족대표가 먼저 꽃바구니와 국화 한 송이를 올리고 참배를 했다. 이어 공직자, 종친회, 산성마을신문 추진위원회, 일반시민 등이 함께했다.

백호 윤휴(1617~1680)는 17세기 조선시대 산림학자, 실천적 경세가, 개혁적 사상가이다. 본관은 남원, 초명은 윤갱, 자는 희중, 호는 백호, 하헌이다. 이조참판 윤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희손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윤효전이며, 어머니는 첨지 중추부사 김덕민의 딸이다.

1620년 4세 서울 쌍계동에서 경기도 여주로 이전, 1623년 충북 보은으로 낙향, 1635년 19세 안동권씨 권첩의 딸과 결혼, 우암 송시열과 속리산 복천사에서 만남, 1636년 20세 병자호란이 일어나 신하로서 부끄러움을 자책해 치욕을 씻을 때까지 벼슬에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 후 학문에 정진했다.
1638년 22세에 어머니를 모시고 선대가 살던 공주 유천으로 이주했다.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유계, 권시, 윤문거, 윤선거 등 서인 계열의 명유들과 교분을 나누웠다.
1675년 59세 성균관사업, 대사헌, 판서 역임, 1679년 63세 우찬성 역임(숙종 5년), 1680년 5월 20일 64세 경신환국 정변으로 사사, 1907년 여러차례 추탈과 복직이 반복 이후 복권되었다.
저술에는 사단칠정인심도심설, 독서기, 홍범설, 주례설, 중용설, 효경장구고이, 대학설, 중용장구보록서, 중용대학후설 등이 있으며, 조선의 유학사상으로도 매우 중요시 되는 업적이다.